
<김희경 기자> 최근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응급환자가 대학병원으로부터 치료 거부를 당해 사망한 사건에 이어, 의료계가 환자를 볼모로 과도하게 약 처방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의료관계자들은 힙포크라테스의 선서대로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최선의 치료를 해 주어야 하는데 거꾸로 환자를 볼모로 과도한 약 처방을 하고 있다는 얘기는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를수록 다량의 약을 먹고 있는 연령층이 지속적으로 낮아져 10대들도 당뇨 약을 비롯한 성인병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젊은 층도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하는 약의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당뇨병을 비롯한 심혈관 등 성인병은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하는데 문제는 완쾌가 되지는 않고 증상만 완화시키는 효과 밖에 없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병원에서는 거의 모든 환자들에게 혈당을 체크하고 그에 따른 약을 먹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왜 그럴까? 완쾌되지 않는 병의 치료를 위해 죽을 때까지 약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소한 병의 완쾌를 위해 식이요법과 운동을 권하는 것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아닐까?
대다수의 국민들은 의료업계가 환자를 진정한 환자로 보지 않고 돈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환자는 수당’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어 많은 환자들에게 약을 먹게 하고, 하지 않아도 되는 MRI나 CT등을 찍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응급환자나 생사를 오가는 긴급한 경우에는 해당 약과 MRI, CT등을 찍어야 한다. 그러나 긴급을 요하지 않는 환자들에게 다량의 약과 MRI, CT등을 찍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최근 언론에서도 성인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1인당 1억원의 병원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이 돌고 있다.

당뇨병을 십 수 년을 앓고 있는 한 시민은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매년 약의 숫자가 늘어나고 병원비가 올라 가계에 상당히 부담이 된다”면서 “약의 노예가 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우울감과 함께 삶의 의욕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이를 대변하듯 대한 당뇨협회는 “2015년에 약 2조 8천억이 치료비로 쓰였고 2020년은 약 2조 9천억이 치료비로 쓰였다” 면서 “치료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국가적인 관리가 필요할 정도이다”고 발표했다.
우리는 현재 ‘약을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꼭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들에게 필요한 ‘약을 권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만 증상이 경미한 경우에는 약보다 식이요법과 운동을 권해 그 결과를 보고 약을 먹든가 먹지 않던가 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의료인들이 평균 4억원의 연봉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신을 위해 환자를 볼모로 집단사직으로 응급환자를 사망케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 어떠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한 보신주의는 하루빨리 버려야 하는 악습이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의료인의 가족이 다량의 약을 먹게 되고 의사들의 진료를 거부해 사망했다고 하면 과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국민과 사회가 인식하는 보편타당한 의무를 거역하고 환자가 죽어나가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이 이치에 맞는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행동은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의료인으로서의 기본을 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자업자득 (自業自得)과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이치를 안다면 힙포크라테스의 선서대로 조용히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
위독한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했다. 지금도 시계의 초침은 돌아가고 있다. 부디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